엄마는 겨울이 되기 전 백 장의 김을 샀다. 백 장 한 묶음을 한 톳이라고 했다. 겨울 방학이 되면 백장의 김은 나의 숙제가 되어 쟁반 위에 놓였다. 나는 키가 낮은 종지에 참기름과 식용유를 섞어 담고, 맛소금을 꺼냈다. 손에 딱 맞는 크기의 붉은색 솔에 기름을 발라 골고루 김 한 면에 바르고 소금을 한 꼬집 집어서 골고루 뿌렸다. 조심스럽게 한다고 했지만 기름은 여기저기 떨어지고 소금을 결코 김 위에만 있지 않았다. 잘 구워진 김은 여섯 개나 여덟 개로 잘라서 깨끗하게 보관된 라면 봉지에 담고 고무줄로 단단히 묶어 보관했다.
백이라는 숫자가 지금 생각하면 너무 많게 느껴지지만 아무 생각 없이 그 일을 했다. 스트레스나 중압감도 없었고, 먹을거리 장만하다는 뿌듯함도 없었다. 어릴 때는 엄마가 옆에서 김을 구웠고 조금 자라서는 굽기까지 내 몫이었다. 처음에는 불조절을 하지 못한 프라이팬 위에서 김은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빠르게 타 들어 갔지만, 열 장 쯤 굽자 마침내 나는 적당하게 굽는 기술은 습득한 것 같았다. 조미김을 만드는 나의 작업은, 반찬 이라고는 김치와 김이 다인 그 계절동안 반복되었다.
겨우내 밥상에 올려지는 김에 질려서 나는 이십 대 초반부터 십 년 간 김을 잘 먹지 않았다. 김을 다시 만난 시간은 아기가 밥을 먹기 시작할 때였다. 아이는 육아책에 나온 것처럼 십이 개월부터 밥을 먹는 것을 시작하지 않았다. 십일 개월이 되자 죽과 같은 질감의 이유식을 거부하고 어른이 먹는 밥을 달라고 했다. 나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밥을 조금 줬고, 아이는 정말 좋아하며 잘 먹었다. 이후로 이유식 고민은 아기 반찬으로 옮겨갔다. 맵고 짜지 않고 알레르기 걱정 없는 김은 아이의 주식이 되었다. 따뜻한 흰 쌀밥에 김을 싸서 주면 오물오물 맛있게 먹었다. 십년 넘게 이별한 김은 다시 내 곁에 왔다. 결코 나는 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가 어른이 먹는 음식도 함께 다 먹게 되니 김은 어느새 삶에서 살짝 잊혀졌다. 그러다 미국 유명인의 아이가 김을 간식으로 먹는다는 사진을 보았다. 김이 밥 반찬이 아닌 간식이라니 조금 당황했지만 우리나라 음식이 인기가 많아지니 좋았다. 팔 년 전 쯤 가을 아이의 초등학교에서 다문화의 밤 행사를 한다고 했다. 우리집은 쌀 뻥튀기 과자와 김을 기부하기로 하고 직접 한국을 알리는 내용의 벽보와 시식하는 부스를 만들었다. 쌀 뻥튀기 과자는 다들 거부감 없이 먹었고 김은 무엇인지 몰라서 물어보고 처음이라서 시도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국에서도 소도시라서 아직 덜 알려진 것 같았다.
김은 이제 언론에서 검은 반도체로 불릴 만큼 한국에서 해외로 수출도 많이 되고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음식이 되었다. 바다에서 자라서 미네랄과 섬유질이 풍부한 천연 식품인 김은 반찬으로, 간식으로도 자주 먹고 , 과거와 달리 미국 마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인기 식품이다. 가끔 선물로 받는 김을 굽기는 하지만 엄마처럼 백 장씩 준비하기에는 귀찮음이 앞서서 주로 포장된 구운 김을 산다. 바쁜 아침에 꺼내서 주기 쉬워서 편한데도 가끔 포장 뜯는 것 조차 귀찮을 때는 나도 참 큰일이다 싶다. 그러나 김에 쏟는 시간이나 정성도 인생 총량의 법칙이 존재해서, 어린시절 다 써버린 까닭이라고 나에게 작은 용서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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